퇴직연금 수익률, 왜 안 오를까? 기금화 전환이 해답일까
퇴직연금은 근로자들이 퇴직 이후의 삶을 대비하는 중요한 제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효과는 생각보다 미미한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매달 일정 금액을 적립하고 있지만, 그 자산이 기대만큼 자라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구조입니다. 개인이 열심히 모은 돈이 체계적인 운용 없이 묶여 있다면, 수익률은 정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 퇴직연금 수익률은 낮은 걸까요?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운용 방식의 한계입니다. 대부분의 기업은 자체적으로 퇴직연금 자산을 관리하고 있는데, 이를 '계약형' 운용이라고 합니다. 즉, 각 기업이 개별적으로 금융기관과 계약을 맺어 연금을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괜찮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수료 부담이 크고 운용 전략이 제각각이라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퇴직연금의 평균 수익률은 약 2.9%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같은 시기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자산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반면, 기금 형태로 운영되는 국민연금은 같은 기간 동안 평균 7%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두 제도 간 수익률 차이는 구조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이 기금화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여러 기업의 자산을 하나로 모아 운용하는 방식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산 규모가 커지면 보다 다양한 투자 전략을 실행할 수 있고, 전문 운용 인력을 활용할 수 있으며, 수수료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들이 모두 충족될 때 퇴직연금은 지금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바뀌게 됩니다.
디폴트옵션 개편이 중요한 이유
많은 근로자들은 퇴직연금에 가입하면서도 어떻게 운용할지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자산이 자동으로 정해진 방식에 따라 운용되는데, 이를 '디폴트옵션'이라고 부릅니다. 현재 디폴트옵션은 대부분 예금이나 적금처럼 원금이 보장되는 상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안정성은 있지만 수익률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퇴직연금 자산 중 약 80%가 원리금보장형 자산에 투자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다수의 근로자가 자신의 노후 자산을 수익보다 안전에만 맡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이 구조가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투자 교육이 부족하고, 운용에 대한 정보도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디폴트옵션 제도 자체를 손보려고 합니다. 앞으로는 예금과 적금 중심의 운용 방식에서 벗어나, 채권형 펀드, 글로벌 ETF, 타깃데이트펀드(TDF) 같은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구성하는 방향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품은 안정성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장기적인 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타깃데이트펀드는 특히 주목할 만한데, 투자자의 은퇴 시점을 기준으로 주식과 채권 비중을 자동으로 조절해 줍니다. 투자자가 별도로 신경 쓰지 않아도 일정한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연금과 같은 장기 자산에 적합합니다. 디폴트옵션이 이런 상품으로 개편된다면, 수익률을 높이면서도 리스크는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위험자산에 대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
퇴직연금 자산의 수익률이 낮은 또 다른 이유는 투자 자산의 편중입니다. 대부분의 퇴직연금이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치중되어 있다 보니, 주식이나 글로벌 자산과 같은 위험자산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원금 보장은 안정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긴 시간 동안 자산을 운용하는 연금 특성상 수익률을 지나치게 낮게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손해일 수 있습니다.
미국의 401(k) 제도를 보면, 투자자의 성향에 따라 주식, 채권, 대체투자 등 다양한 자산에 자유롭게 분산 투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자산군에 과감히 접근하면서 연금의 성장을 이끌어 왔습니다. 이와 같은 유연한 구조가 한국의 퇴직연금에는 부족한 실정입니다.
현재 한국의 퇴직연금은 타깃데이트펀드(TDF)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위험자산 비중이 70%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즉, 주식이나 실적배당형 펀드에 70% 이상 투자할 수 없으며, 나머지 30%는 반드시 채권이나 예금처럼 안정적인 자산에 분산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규제는 수익률을 보장하지 않으면서도 자산 운용의 유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됩니다.
물론 위험자산 투자는 리스크를 동반합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회피는 오히려 손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물가 상승률 이상을 목표로 하는 장기 자산 운용에서는 안정성과 수익성 사이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위험자산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기보다는, 위험을 감내하되 분산 투자와 장기 투자 전략으로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이 더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은 가입자가 일정 기간 동안 꾸준히 자산을 불입하고, 향후 수십 년 뒤에 수령하는 구조입니다. 이런 특성을 고려하면 단기적인 수익률보다 장기적인 복리 효과가 훨씬 중요합니다. 위험자산이 주는 수익률은 단기간에는 변동성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예금보다 훨씬 높은 누적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은 여러 연구에서도 입증된 사실입니다.
결국 위험자산 투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의 문제입니다. 제대로 설계된 포트폴리오, 분산 투자 원칙, 중장기 목표 설정이 이루어진다면, 퇴직연금의 성과는 지금보다 훨씬 개선될 수 있습니다. 정책 당국과 금융사 모두 이러한 방향성을 인식하고 제도와 상품을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금화와 전문 운용의 필요성
퇴직연금을 개별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각각 운용하는 현재의 방식은 한계가 뚜렷합니다. 수익률이 낮고, 수수료는 상대적으로 높으며, 투자 전략도 비효율적으로 운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한 대안이 바로 퇴직연금의 기금화입니다.
기금화란 여러 기업의 퇴직연금 자산을 하나로 모아, 국가나 공공기관이 설립한 전문 운용 기구가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구조입니다. 이 구조가 실현되면 자산의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글로벌 자산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지고, 장기적인 투자 전략 수립도 가능합니다. 동시에 운용 수수료도 절감할 수 있어, 전체적인 수익률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이미 이러한 기금형 구조를 채택하고 있으며, 안정적이면서도 높은 수익률을 꾸준히 유지해 왔습니다. 물론 퇴직연금은 공적 연금이 아닌 사적 연금이기 때문에 동일한 방식은 어렵지만, 통합 운용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모델을 충분히 참고할 수 있습니다.
기금화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관련 법령의 개정은 물론, 기금을 운용할 전문 기관의 설립, 이해당사자 간 협의, 가입자의 동의 확보 등 다양한 절차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 효과는 충분히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문 운용 기구는 단순한 자산 운용만이 아니라, 시장 전반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민간 금융기관과의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시장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동시에 가입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와 수익률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기금화는 퇴직연금 제도의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는 대전환입니다. 개별 운용의 한계를 넘어, 통합된 관리 체계와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운용 전략을 통해 퇴직연금의 실질적인 수익률을 높이고, 가입자의 노후 자산 형성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제도는 결국 가입자를 위한 것입니다
퇴직연금 제도는 단순한 저축 수단이 아닙니다. 이는 노동자들이 은퇴 이후에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사회적 장치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제도의 설계나 운용 방식에서 많은 한계가 존재했고, 그 결과 수익률 저조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해 왔습니다.
기금화를 통한 구조 개선, 디폴트옵션의 개편, 위험자산 투자 확대 등은 이 제도의 실질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정책적 선택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지점도 많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가입자의 이익입니다. 제도의 모든 방향은 근로자의 노후를 중심에 두고 결정되어야 하며, 수익률과 안정성이라는 두 가지 축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합니다.
앞으로의 퇴직연금 제도는 보다 투명하고, 보다 전문적이며, 무엇보다 가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책 입안자와 금융업계, 그리고 가입자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퇴직연금은 진정한 의미의 노후 대비 수단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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