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X-B 사업 또 연기? 대형 건설사가 공공 사업을 외면하는 진짜 이유
GTX-B 노선과 서부선 경전철 사업에서 나타난 대형 건설사들의 연쇄 이탈은 단지 하나의 프로젝트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이것은 지금의 공공 발주 제도가 가진 구조적 한계가 더는 민간 기업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자 경고입니다. 민간은 왜 공공 사업을 외면하고 있는지, 그 속에 감춰진 구조를 하나씩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연쇄적으로 떠나는 대형 건설사, 신호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GTX-B 노선은 인천 송도에서 남양주 마석을 잇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로서, 수도권 시민들의 출퇴근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는 핵심 교통망입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착공조차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미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사업을 주도하던 DL이앤씨는 컨소시엄에서 완전히 이탈했고, 현대건설도 13%의 지분을 포기하면서 사실상 사업을 포기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건설사들의 결정은 단순한 손익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사업 지연, 불리한 계약 조건, 수익 구조의 불투명성 등 오랜 시간 누적된 문제들이 건설사로 하여금 결단을 내리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국가 주도 사업'이 안전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컨소시엄 구성 당시에는 일정 지분을 기준으로 수익이 배분되며, 향후 운영 수익도 민간이 일정 부분 책임지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착공이 지연되면서 자금이 장기간 묶이고, 정부의 명확하지 않은 일정과 반복된 행정 절차는 신뢰를 무너뜨렸습니다.
사업 구조 자체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수익이 발생하는 시점은 빠르면 10년 이후이며, 그동안 발생하는 금융비용, 자재비, 인건비 상승은 모두 민간이 감당해야 합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위험만 크고 수익은 불확실한 구조인 셈입니다. 실제로 금융권에서는 이와 같은 장기 민자사업을 '극히 보수적으로 평가해야 할 대상'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가 반복될수록, 앞으로 민간은 공공사업에서 발을 빼게 될 가능성이 더욱 커집니다. 결국 남는 것은 착공도 못 한 채 방치되는 거대 인프라 프로젝트와, 이를 기다리는 시민들의 불편뿐입니다.
2. 서부선 경전철 17년 표류, 숫자가 말해주는 문제의 심각성
서부선 경전철은 서울 서북부와 남서부를 연결하는 16.2km 길이의 노선으로, 수요 예측 결과만 보면 매우 매력적인 교통 인프라 사업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17년째 사업이 표류 중입니다. 당초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던 두산건설 컨소시엄은 참여했던 GS건설, 현대엔지니어링이 빠져나가면서 사업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지난해 정부는 총사업비를 642억 원 늘려 1조 5783억 원으로 증액했지만, 이 역시 민간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현재의 민자사업 구조로는 공사 리스크를 감당하면서도 적정 수익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두산건설 측은 다양한 기업들과 협의를 진행 중이지만, 확정된 파트너는 여전히 없는 상태입니다.
사업 지연의 문제는 단순한 행정 실패만이 아닙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착공 전 수년간 계약을 준비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융 비용과 설계 비용 등을 모두 자비로 부담해야 합니다. 사업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해당 비용조차 회수하지 못한 채 철수하게 됩니다.
서울 서남부 지역은 이미 교통 체증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러나 민간이 참여하지 않으면 사업은 무기한 연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결국 시민들의 불편이 고스란히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공공이 나서서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이런 사업은 앞으로도 계속 표류하게 됩니다. 명확한 정책 방향,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십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리 사업성이 있는 프로젝트라도 민간은 외면하게 될 것입니다.
3. 연차공사 제도, 물가 상승을 외면한 시스템의 모순
연차공사 제도는 예산의 회계년도 기준에 따라 공사를 연도별로 쪼개어 발주하는 구조입니다. 이 제도는 정부 입장에서는 예산을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건설사 입장에서는 매우 불합리한 계약 구조로 작용합니다.
연차공사는 최초 계약 시점의 공사비 단가가 수년간 고정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자재비와 인건비가 해마다 상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2024년 기준 철근은 전년 대비 11%가 넘게 상승했고, 콘크리트, 시멘트, 유류비 등 핵심 자재 대부분이 8% 이상 인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비용은 계약에 반영되지 않으며, 소비자물가지수 기준으로만 공사비 조정이 이루어집니다.
이로 인해 건설사들은 실제 비용보다 낮은 금액으로 수년간 공사를 이어가야 하며, 이는 결국 적자를 떠안게 되는 구조를 만듭니다. 장기 프로젝트일수록 손해 폭은 커지게 됩니다. 일부 업체들은 이를 감수하면서도 공사를 수주하지만, 이는 이익보다 다른 사업 참여 조건이나 기업 이미지 개선 등을 위한 전략적 판단일 뿐, 사업성만 놓고 보면 참여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로 인해 품질 저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수익이 나지 않으면 결국 자재비를 줄이고, 인력을 최소화하며, 공기 단축을 압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결국 안전사고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실제로 연차공사에서 품질 문제가 제기된 사례는 매년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민간에게 원하는 것은 참여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조건 없이 참여만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민간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참여를 이끌고 싶다면, 최소한 손해 보지 않는 구조를 먼저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4. 제도는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민간도 움직입니다
지금까지 반복된 문제의 핵심은 민간에게만 리스크를 전가하는 제도입니다. 정부는 민간의 참여가 부족하다고 우려하면서도, 정작 그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민간이 움직일 수 없습니다.
첫째로 바뀌어야 할 것은 공사비 산정 기준입니다. 지금처럼 소비자물가지수만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건설 원가 지수, 자재별 시장 가격 등을 반영하는 다변화된 기준이 필요합니다. 이는 이미 OECD 일부 국가에서 실행 중이며, 참여 기업들의 만족도 역시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둘째는 리스크 분담 구조의 개선입니다. 수요 예측 실패, 착공 지연, 민원 발생 등에 대한 리스크를 전부 민간에게 넘기기보다는, 일정 부분은 정부가 보증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일정 수준 이하의 수요 발생 시 손실의 일부를 공공이 분담하거나, 자금 조달을 위한 금리 차액을 보전해주는 방식이 있습니다.
셋째는 공정하고 투명한 행정 처리입니다. 민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리스크입니다. 행정 처리 지연, 부처 간 이견, 정책 방향의 급작스러운 변경 등은 민간으로 하여금 '안전한 선택지'를 포기하게 만듭니다. 민간이 다시 공공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하려면, 행정의 예측 가능성과 책임 있는 절차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결론
지금은 민간이 공공사업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공이 민간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든 구조를 자초한 것입니다. GTX-B와 서부선에서 나타난 건설사들의 이탈은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그동안 누적된 제도적 결함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증거입니다.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정부가 먼저 현실을 직시하고, 민간이 손해 보지 않는 사업 구조를 설계해야 합니다. 제도는 신뢰를 만들기 위한 기초입니다. 그 신뢰가 회복되어야만 민간도 다시 공공사업의 파트너로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의 공공 인프라 사업이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구조적 개편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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