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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었어야 했다” – 이재석 경사의 마지막 구조와 조직의 침묵

소소조 2025.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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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한 해경의 죽음. 하지만 그 죽음 뒤에는 침묵하라는 조직의 지시와 무너진 구조 매뉴얼이 있었습니다. 국민은 묻습니다. 그는 왜 혼자였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질문에 반드시 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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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날 새벽, 단독 출동이라는 비정상적 구조 대응

새벽녘, 갯벌에 고립된 70대 남성을 구조하기 위한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현장에는 인천 옹진군 영흥파출소 소속 이재석 경사가 출동했습니다. 문제는, 아무도 그와 함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해양경찰청 매뉴얼에 따르면 위험 지역 출동 시에는 2인 1조 원칙이 기본입니다. 특히 갯벌, 야간, 조류가 센 지역일수록 이 원칙은 더 엄격히 지켜져야 하죠. 하지만 이 경사는 혼자였습니다. 그는 구조 대상자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주었고, 그 후 실종됐습니다.

사건 발생 6시간 만에 그는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구조 대상자는 무사히 구출됐습니다. 물론 그가 보여준 용기와 희생은 존경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 죽음은 단지 영웅의 서사로만 남겨질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근무 중이던 동료가 있었고, 상황팀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출동 지시나 상황 공유는 없었습니다. 출동 결정은 이 경사 개인의 판단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 선택 뒤에는 조직의 대응 부재가 놓여 있었습니다.

문제는 단지 그가 혼자였다는 점이 아닙니다. 사고 당시 지휘 라인의 보고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출동 인력에 대한 관리와 정보 공유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경사의 죽음은 개인의 희생이라기보다는 제도적 허점이 만든 결과였습니다.

[해당 사진은 AI이미지로 본문의 사건과는 무관합니다]

2. 영웅이 아닌 피해자, 동료들의 폭로가 보여준 조직의 침묵

이재석 경사의 영결식 당일, 그의 동료 4명이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사건 직후, 상부로부터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유족과 접촉하지 말라는 요구도 있었고, 그저 눈물만 흘리라고 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지시는 영흥파출소장뿐 아니라 인천해경서장에게서도 내려온 것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내부 지시에 따라 침묵을 지키다가 결국 양심의 가책을 느껴, 더는 조용히 있을 수 없었다고 기자회견을 결심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이 발언은 조직의 책임 회피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였습니다. 어떤 공공기관도, 특히 생명 구조를 책임지는 해양경찰이 진실을 은폐하는 듯한 모습은 국민의 신뢰를 근본부터 흔들 수 있습니다. 더욱이 유족과의 소통까지 차단했다면, 이는 단순한 내부 조율이 아니라 권한 남용이 될 수 있습니다.

기자회견 이후 해양경찰청은 “유족에게 자료는 모두 제공했고, 지시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동료들의 폭로는 구체적이고 일관된 내용으로 구성돼 있었으며,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분명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침묵을 강요받은 이들이 다시 침묵하지 않기로 한 그날, 국민은 비로소 진실의 한 조각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조직이 그 진실에 응답할 차례입니다.

3. 진상조사단 출범, 신뢰는 결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기자회견 이후, 사회적 반향은 빠르게 커졌습니다. 해양경찰청은 결국 외부 전문가 6명으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을 출범시켰습니다. 이들은 사고 경위와 출동 결정 과정, 지휘 체계, 그리고 내부 지시 여부까지 포괄적으로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해경은 이번 조사를 통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결과를 도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단지 조사의 시작이 아니라, 그 조사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고, 그에 따라 어떤 실질적인 조치가 뒤따르느냐입니다.

이 사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단독 출동 경위입니다. 왜 출동 매뉴얼이 무시됐는지, 왜 팀장과 지휘부는 구조 요청 상황을 공유하지 않았는지, 또 왜 조직은 침묵을 강요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진상조사의 핵심입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만 놓고 보더라도, 단순 사고 이상의 구조적 문제가 분명합니다. 특히 보고 누락, 현장 지휘의 부재, 응급 대응 체계의 실패, 유족 소통 차단 등은 단 하나만으로도 조직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사안입니다.

이번 조사 결과는 반드시 구체적이고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제도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재석 경사의 희생은 그저 하나의 뉴스로 사라질 뿐입니다.

아래는 진상조사단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핵심 항목들입니다.

조사 항목 세부 내용 조사 목적
출동 결정 경위 이 경사가 왜 혼자 출동했는지, 보고와 판단 체계 분석 매뉴얼 적용 실태 점검
지휘 체계 오류 현장 지휘자 및 상급자의 상황 인식과 조치 여부 책임자 규명 및 시스템 개선
함구 지시 여부 유족 접촉 금지 및 언론 대응 통제 지시의 실체 확인 조직 문화 개선
재발 방지 대책 장비, 인력, 매뉴얼 개선안 도출 구조 시스템 정비

진상조사는 시작입니다. 그 이후의 변화가 없다면, 조직은 또 한 번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입니다. 이제는 책임자 징계에서 그치지 않고, 구조 시스템을 바꾸는 실질적인 개혁이 필요합니다.

4. 다시는 혼자 보내지 않기 위해: 제도는 실행되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이재석 경사는 구조 요청이 들어왔을 때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현장에 나설 때, 조직은 그를 지켜주지 않았습니다. 그가 구조 대상자에게 구명조끼를 건넬 수는 있었지만, 정작 본인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해경은 ‘2인 1조 출동 원칙’을 수차례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원칙은 종종 현실과 타협되고 있습니다. 인력 부족, 교대 근무의 한계, 장비 미비 등은 현장에서 이 원칙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말뿐인 규정이 아닌,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야간 구조 대응 시 인력 자동 배정 시스템, 스마트 위치 추적 장비, 현장 보고 앱 등 기술적 지원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출동을 지시하거나 판단하는 상급자의 책임 체계도 바뀌어야 합니다. 모든 출동 기록은 로그로 남겨야 하며, 출동 지휘에 대한 책임 소재도 명확히 해야 합니다. 개인의 판단에 의존하는 구조는 언제든 실패할 수 있습니다.

이 경사의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가 생명을 구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생명을 잃을 이유가 없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사회가 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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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그는 왜 혼자였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변화는 없습니다

이재석 경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영웅’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를 영웅으로 기억하기 전에, 한 사람의 공무원이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그가 홀로 출동하지 않았더라면. 그날, 시스템이 제 역할을 했다면. 이재석이라는 이름 앞에 ‘고’라는 글자가 붙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책임은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상황을 가능하게 만든 제도, 침묵을 강요한 구조, 방관한 지휘 체계 모두가 책임의 일부를 나눠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그 책임을 인정하고, 바꾸는 첫걸음을 내딛어야 할 시간입니다.

그는 구조대원이기 전에 한 사람의 아들이었고, 남편이었으며, 동료였습니다. 그런 사람을 다시는 구조 현장에 홀로 보내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 질문을 반복해야 합니다. 그는 왜 혼자였는가?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기 전까지, 변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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